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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방

편견, 밖으로 꺼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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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유모차를 끌고 들어오는 엄마 둘을 보고 나도 모르게 표정을 찌푸렸다.

 ?

아기들은 시끄럽고 제멋대로고,

유모차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엄마들은 수다를 떨러 왔을 테니 조용하지 않을 테고...

몇 초 사이에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즉시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왜 이런 부정적인 판단을 나도 모르게 했을까?

연인들이나 혼자 오는 사람들을 보고는 아무 생각도 안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오는 엄마들을 보고는

, 다르게 반응했을까?

엄마들은 내 정면에 자리를 잡았고

조용히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기들도 울지 않게 잘 달래고 있다.

 

 

편견: 고정된 해석

내가 엄마 둘을 보고 몇 초 사이에 보인 반응은 

편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나의 고정된 해석으로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들을 판단했다.

왜 그랬을까?

 

 

편견은 일종의 자기보호 역할을 한다.

 

가게에 손님이 없으면 음식이 맛이 없을 거라는 고정된 해석,

잘생긴 남자는 바람둥이 기질이 있을 거라는 고정된 해석.

이런 종류의 편견들은 일차적으로는 자기 보호를 위한 것이다.

 맛없는 식당을 선택하는 실패로부터 피하기 위해,

잘생긴 남자에 끌리기에 앞서 못된 남자를 고를 실패로부터 피하기 위함이다

(잘생긴 남자일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

  편견의 역할을 간단히 이렇게 말 할 수 있겠다.

 

 

일단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엄마 둘을 보고 내가 느낀 편견은 무엇인가.

아줌마들은 시끄럽다는 편견,

아기들을 방치할 것이라는 편견,

안하무인이라는 편견.

 

타인을 단면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이것은 흔히 맘충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설명할 때 쓰는 표현이다.

나는 엄마 둘을 보자마자 맘충의 이미지를 그들에게 집어넣었다.

내가 카페에서 조용히 내 할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위험을 느끼고

순간적으로 표정을 찌푸리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정작 아이들은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신생아였는데 말이다.

엄마들도 전혀 시끄럽지 않았다. 

한 명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자마자 남아있는 한 명과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내가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편견이 자기보호의 기능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것일까?

 

편견은 일반화와 떨어질 수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편견은 다 일반화의 작업이다.

엄마들은 다 맘충이고, 노숙자들은 다 게으르고, 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면

한심한 족속들이고, 책을 읽으면 고상한 사람이고,

의사는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할 것이고....

이런 자잘자잘한 편견들은 우리 몸 속에 파고들어 있고

이는 결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카페에 오는 엄마들은 다 민폐야

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애기들이 우는데 그냥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기고만장해지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것 봐, 내 말이 맞지. 아줌마들은 다 개념이 없다니까.”

 

 하지만 내가 편견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상황을 마주했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왜 애기가 우는데 저렇게 내버려두는 거지? 개념이 없나?”

 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둘 차이를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는 대상을 묶어 판단하는 일반화가 빠져있다.

그 때 그 사람, 그 때 그 상황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다.

 그 사람들은 아줌마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개인이다.

 

우리는 아줌마가 아닌 개인으로 대상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첫 번째는 편견을 더 확고히 해주었고

 아마 이 경험으로 나는 어딜 가나 더욱 '아줌마=맘충' 이라는 공식을 달고 다녔을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했다니까~”라며 마치 결정적인 증거도 갖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편견은 자신이 언제나 옳다는 착각에 들게하여

오만하게 만든다.

 

 

편견은 자기 세계에 스스로를 꼼짝없이 가두는 행위다.

 

편견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세계가 좁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세계가 좁다는 것은 이해의 폭이 좁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이해의 폭이 좁다는 것을 알까?

전혀. 알 수가 없다.

자기 세계가 전부라 믿기 때문이다.

이해의 폭이 좁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고집이 세고 판단하기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의 수많은 스펙트럼은 무시한 채 자극적이거나,

매체에서 주로 보여주는 것들만 가지고 전체를 바라보고,

좁은 시야로 세상을 보니

어떤 상황을 마주해도 그에 대한 해석은 자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어떠한 부류로 묶는 짓을 저질렀다면

재빨리 감지하고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이것이 '편견, 밖으로 꺼내기'의 시작이다.

 

 

어떤 의사가 정치, 사회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뽐냈다면,

'역시 의사라 다르다'가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이 정치, 사회에 관심이 많고 공부를 많이 한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편견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다 알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다

하지만 일단 '밖으로 꺼내'는 작업이 첫 번째다.

평소에 내가 당연하게 신봉하거나 받아들인 사실이 있다면

그 이유에 대해 지금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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