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방

글쓰기의 시작은 어떻게?

임월드 2019. 2. 1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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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노트북을 켰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딱히 떠오르는 주제 없이 무작정 노트북을 꺼내 구글 문서를 연 뒤 손가락을 타자 위로 갖다 댄다면,

어떤 문장들을 쓰게 될 까?

분명한 것은 나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엇을 써야할 지 모른 채 그저 써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자리에 앉았다.

글쓰기는 질보다 양이다.’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봤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찾아본 글쓰기 관련 책에 이 문구가 없던 책은 하나도 없었다.

양을 채우려고 오늘도 일단 적고 본다.

 

 

할 말이 딱히 없으니(사실 머릿속에는 엄청 많은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일단 내가 있는 장소부터 묘사해봐야겠다.

, 나는 묘사에 약하다. 사실 약하다고 말하는 건 적절한 어휘 선택이 아니다.

 ‘ 묘사에 약하다라고 말 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글쓰기를 어느 정도 오랫동안 해 와서

다양한 종류의 글도 꽤 많이 써봤지만, 묘사만큼은 잘 안되더라.’라는 뜻이어야 한다.

 

최근에 에세이를 쓰면서 처음으로 내 집을 묘사해야 했는데,

내가 묘사를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집 구조가 대단히 복잡해서인건지

글을 수정할 때마다 문장이 계속 늘어났다.

 결국에는 처음보다 문장이 몇 배 길어졌고 더 이상 묘사가 아닌 설명이 되어버렸다.

 내 머릿속에만 있는 물체나 감정 등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단번에 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묘사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글쓰기 책을 몇 권 읽다보니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다.

 ‘많이 써라’, ‘필사 해라’, ‘많이 읽어라’, ‘일단 써라등등.

그 중에서도 주목하고 싶은 것은 많이 써라일단 써라.

이 둘은 미묘하지만 완전히 다른 포인트다.

 ‘많이 써라는 말 그대로 많이 쓰라는 말이고 일단 써라는 어떤 글이 되었든 시작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시작하는 데 애를 많이 먹나보다.

 내 생각엔 일단 써라가 되어야 많이 써라가 가능해진다.

일단 무조건 써보는 사람과 시작부터 끙끙 앓는 사람,

둘 중에 누가 더 많이 쓰겠는가?

 

 

나에겐 글을 시작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

그냥 쓰고 본다. 지금 이 글을 시작하는데도 1분 남짓 걸린 것 같다.

도저히 쓸 게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그 이야기로 시작했다.

왜 남들한테는 어렵다고들 하는 것이 나한테는 쉽지?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건가?

스스로 판단하자면 지금 나의 글쓰기 실력은 굉장히 걸음마 수준이다.

 그게 아니라면,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없는 건가?

그래서 아무렇게나 막 시작하는 건가?

아닌데, 무지 잘 쓰고 싶은데.

누구한테 보여주지 않아도 되서 그런가?

아닌데, 그런 마음이었다면 애초에 글쓰기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 지금 문득 답이 떠올랐다(문득, 직관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대체로 맞더라).

두 가지 인데,

첫째로 아직 나는 잘 써야 하는 단계가 아님을, 내 수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질보다 양이다를 성실히 실천해야 할 때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글쓰기를 얼른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냥, 빨리 쓰고 싶다. 시작에 공들이는 시간을 못 참는다.

 글쓰기를 한창 하고 있는 그 상태에 얼른 도달하고 싶다.

그 상태란, 집중력이 막 올라가 나만의 세계에 골똘히 빠져있는 상태를 말한다.

 내가 의도적으로 집중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한 문장 한 문장 쓰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그 상태에 빠져든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경험은 특히 나에게, 다른 어떤 것에서도 느낄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경험이다.

나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 그것은 마음에서 발현되는 감성의 작업이 될 수도 있고

논리성을 끊임없이 찾는 이성의 작업이 될 수도 있다.

대게 하나의 글을 쓸 때 두 친구 모두 동원된다.

어떤 사람은 둘다 필수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감성을, 감성을 위한, 감성에 의한 글이어도

기본적인 맞춤법은 물론이고 이야기의 연결성과 논리성까지 신경쓰며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가 쉽지 않나보다.

그만큼 글쓰기는 매력 있는 작업이다.

 

 

글쓰기를 할 때마다 경험한다.

계속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되는 경험. (물론 배고프면 밥 먼저 먹어야 한다.)

 쉬지 않고 타이핑을 해대는 무아지경의 상태는 아니지만, 손은 쉬어도 머리는 쉬지 않는다.

가끔씩 고개를 들어 이리저리 눈은 다른 데로 향해도

내 머릿속은 계속 그 세계를 헤매고 있다.

내 손가락은 계속 준비하고 있다.

고개가 다시 노트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첫 문장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큰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 아닐까.

그것도 한 번에 그리기를 원해서 그 욕심이 시작조차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주제 없이 글쓰기를 시작하다보니 자연스레 글쓰기에 대한 얘기로 흘러왔다.

그래, 뭐든 써진다니까.

 이렇게 시작하면 된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돈 받고 쓰는 글도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의식의 흐름 대로 쓰면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무엇을 써야 할지 알게된다.

 

마르셀 푸르스트는 흐르는 의식을 아주 면밀하게, 세밀한 관찰력으로 그려내

 당대 권위 있는 문학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 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일단 읽히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그의 의식의 흐름을 내가 왜 읽어야하는지 이해가 안가 책을 닫아버렸다.

버지니아 울프도 그렇게 찬사를 했다지. , 버지니아 울프도 별로 내 스타일이 아니라.

그런데 푸르스트를 읽은 사람들은 왜 다들 별점을 그렇게 높게 줬을까?

 아니, “아무리 유명하다지만 어렵고 이해가 잘 안돼요라고 쓴 사람의 별점은 왜 5점 만점에 5점이지?

나는 모르겠지만 다들 좋다고 하니까 일단 높게 줘보고 차차 좋아지도록 나도 노력해보자뭐 그런 얘긴가?

나도 언젠간 다시 시도를 해볼 테지만,

남들이 이해하고 감동하는 것을 나도 한번 느껴보자!’라는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차원에서 하는 것이지,

 ‘유명하고 권위 있는 책이니까 어디서 나도 한번 읽어봤다는 소리는 해야지라는

독서가 행세를 위한 시도는 아닐 것이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가 내면에 흠뻑 젖으면서도 논리성을 잊으면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

 

이 말을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내가 평소에 하고 있던 생각이여서 글로 바로 튀어나온 것일까?

아니면 글을 쓰며,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다보니까

새로운 사실을 도출하게 된 것일까?

갑자기 문득 궁금해진다.

의식의 흐름 글쓰기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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