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비문학

<당선,합격,계급> 장강명 4.5

임월드 2019. 2. 1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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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활개칠 수 있는 공간, 대한민국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다.

그들의 기지와 개성을 꺾지 않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 나는 믿는다.

 

 

 

몇 시간 읽었는지 계산해봤더니, 대략 7시간 걸렸다

400페이지인데, 무지 오래도 읽었다.

장강명의 글이 워낙 깔끔하고 잘 읽히는 글이어서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중간중간에 동어반복이라고 해야 할까,

'앞에서 이 말 했던 것 같은데?'라고 생각이 들었던 부분도 좀 몇 번 있었다.

 

 

본격 책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장강명은 경쟁은 치솟고 신뢰는 떨어진 대한민국에서 한국문학 공모전의 현주소를 파헤쳤다.

공모전이 만들어내는 문턱증후군 현상(<여덟단어>에서 빌려온 표현),

즉 공모전의 문턱을 넘은 사람만이 '검증된' 작가로 대접받는 현실을 조명하면서

장강명은 이를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이 책을 읽는 독자 모두 함께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장강명이 한국문학 공모전의 부조리, 장점, 단점, 한계 등을 파헤치기 위해

다른 산업(변호사, 아나운서,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을 취재하며

그것의 채용과정과 공모전을 비교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문단계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건드리면서 한국에서 ○○이 되려면 어떤 시스템 안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한국사회 전체를 조명하고 있다(장강명이 이 책을 쓴 취지이기도 하다).

문학 공모전도 대기업 직원을 뽑는 원리와 같은 공채 시스템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 자리를 놓고 무수한 사람들이 경쟁을 벌인다는 측면에서 공채와 공모전은 다르지 않다.

또한 장강명은 그런 시스템의 수혜자인 장본인인데도(문학상을 4번이나 탔.) 이러한 문제를 화두로 던진다.

 

 

작가가 되기 위하여,

혹은

기준에 맞는 작가가 되기 위하여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많이 느낀 감정은 씁쓸함, 슬픔이다.

무엇보다 작가 지망생들이 당선 될 만한글을 쓰기 위해 자신의 개성을 지우고 문체를 바꾼다는 얘기가 제일 슬펐다.

 

예술가가 되는 일에도 정해진 방법이 있단 말인가?

 

나는 소설가가 되는 일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공모전은 그저 작가가 되는 방법 중의 하나,

좀 더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작가 지망생들은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것만이 인정받는작가가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라고 말한.

출판사에 투고한다고 해도 편집자가 읽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하고,

공모전 심사위원들이 탈락시켰지만 그중에서도 아까운 책들은 가끔씩 출판하기도 하는데

그런 책들도 결과는 좋지 않다고 한

 

당장 내가 책을 어떻게 고르는지만 봐도 공모전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생소한 작가, 처음 보는 제목의 책은 아무래도 손이 잘 안 간다.

그러다가도 '○○수상작'이라고 하면 '어? 수상작이네?'하고 한번이라도 더 책을 살펴보게 된다.  

단순히 공모전 시스템을, 그리고 그 시스템에 매달리는 지망생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수상작'이라는 딱지가 있어야 손을 내미는 우리 자신도 돌아봐야 한다.

 

하지만 역시 독자들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름도 모르고 무슨 책인지도 모르는데, 수상작이라는 '인증'이라도 있어야지, 안 그런가?

시간과 돈을 쓰면서 실패까지 하고 싶지 않은 독자들의 입장도 천번 만번 이해한다.  

 

하지만 애초에 한국소설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 얼마나 될까?

 

 

어느 작가 지망생의 공모전에 대한 주장이다(책 내용의 일부).

 

신춘문예를 비롯하여 한국에 넘쳐나는 공모전은 새로운 시각,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는 도전자가 상을 타기 힘든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공모전에서 상을 타기 좋은 글이 있고, 심사위원들이 주장하는 파격이란 언제나 기존 문단 문학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런 일이 아예 안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심사위원들은 한정적이고, 대부분 문단계의 권위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품의 선정에는 심사위원의 취향이 반드시 반영되기 때문이다.

 

작가 지망생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너무나 슬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들은 공모전이 아니면 소설가가 될 길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대학을 가는데도 다양한 전형이 있는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이 루트가 아니면 난 예술을 할 수 없어라며 좌절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우리가 얼마나 많은 미래의 예술가들을 놓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우리 젊은 예술가들이 기득권에게 기죽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기득권들이 젊고 파릇파릇한, 이제 막 자라나는 예술가들의 미래를 좌우한다

그들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검증된' 작가가 될 수 없다. 

그러니 기가 안 죽을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독자들의 일

 

장강명은 공모전의 높은 벽을 허물어야만

수년 동안 수백 명의 지망생들이 공모전 하나에 매달리는 동안 생기는 사회적 낭비도 없어지고

등단 작가와 비등단 작가의 배제의 차별도 없앨 수 있다고 말한.

그 해결책 중 하나가 서평을 활발하게 하는 것이.

이미 서평이 활발한 상태였다면

장강명이 이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적으로 영화의 리뷰 수만 봐도 책과 그 차이가 엄청나다.

책을 검색해도 리뷰가 많지 않으니 책을 판단할 길이 없고,

주변에서 추천을 받거나 그렇지 못 할 경우엔 ‘○○문학상이나 베스트셀러 같은 인증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서평을 남겨야 하는 이유

 

몇몇 블로그에 있는 서평들은 광고성으로 혹은 진지하게 쓰이지 않았거나(예비 독자가 그 책이 정말 읽을 만한지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가벼움), 소위 권위있는 문학가들의 서평은 하나같이 칭찬 밖에 없어 서평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 쓰고 있는 왓챠어플에도 영화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리뷰를 올리고 있지만 책에는 그닥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애초에 영화로 시작한 어플이라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 어떤 책에 관심이 생겨 검색을 해도 제대로 된 서평들이 많이 없으니 책을 사야할지 판단이 안 선.

 

밀리의 서재에도 책을 검색하면 읽다보니아침’, ‘똑똑해진것같아요등 이런 식의 글(이라고 해야 하나)밖에 없. , 사실 밀리의 서재는 그냥 눌러서 바로 읽을 수 있으니 크게 상관없겠다.

 

 

진짜 독자들의 솔직하고 비판적인 서평이 활발히 살아숨쉴 때 권위에 의한, 인증에 의한 책 고르기에서 주체적 책 고르기로 나아갈 수 있다.

 

 

나도 훗날에 예술가를 지원하며 살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이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고

그래서 더욱 이 책은 나에게 동기부여를 주었다.

사실 한국 소설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

누구나 다 좋아하는 정유정, 김훈 소설가의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다.

(김훈의 칼의 노래’  첫 장만 읽고, 정유정의 종의 기원은 아예 안 읽고 알라딘에 되팔았다.)

 

 

작은 노력으로는 비주류의 한국소설 코너도 자주 들러보고 꺼내보는 방법이 있다.

좀 더 나아가, 

'등단하지 못한', 그럼에도 소설가로 살아가고 싶은 그들의 글이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노출되고 독자들이 그 글을 가지고 활발히 교류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할 수 도 있다.

 

장강명이 표현한 대로 '독자들의 문예운동'이 필요할 때이다.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 해도 그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작가 자신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넓혀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그들을 알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독자들은 그들이 읽은 책의 경험을 활발히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언론, 출판사에서 힘과 시간을 들여 생소하고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을 알리려고 할 까?

그 시간에 유명하고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구매 할 것 같은

수상한작가들의 책을 홍보하는 데 힘쓸 것이다.

아웃풋을 내야 하는 그들이기에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

그저 우리가 읽은 책을 기록으로 남기고 나누면 되니까 말이다.

 

예비 소설가들은 공모전에 불만을 품으면서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저 시스템을 따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개성을 끊임없이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공모전이 아닌 다양한 루트를 고민하여

그것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소설가 본인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기 때문에 그렇게 할 의무가 있다.

 

장강명은 이 책으로 라는 한 사람에게 문제의식을 심어주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아마 나 한 명 만은 아닐 것이다. 장강명은 화두를 던졌고 많은 사람들이 받았을 것이다. 

 

나는 독자다.

독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계속 서평을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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