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비문학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3.5

임월드 2019. 1. 2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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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 모음★

 

그래서 아침에 30분 일찍 집에서 나와 사무실 근처 벤치나 카페에서 잠깐 책을 읽거나 필사를 했다. 점심시간에 책을 들고 나와 카페에서 한 시간씩 책을 읽다 들어갔다. 쓸쓸한 분투였다. 그것은 번다한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닦아내는 의식 같은 것이자 활자와 최소한의 가느다란 끈이라도 쥐고 있고 싶은 안간힘이었다. 이 물질적 연결이 있을 때 언젠가 그 끈을 확 내 삶으로 당길 수가 있다. 나는 글이 쓰고 싶다는 이에게도 슬쩍 권한다. 하루는 책을 읽고 하루는 글을 쓰며 한 달을 해보라고…

 

스피노자는 "진리탐구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별도의 방법이 필요하지 않으며, 두 번째 방법의 탐구를 위해 세 번째 방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런 인식에도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금속 연마를 예로 든다. 금속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모루가 필요하고 모루를 갖기 위해서는 다른 도구들이 필요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제2, 제3의 도구를 찾으며 무능력을 증명하는 일의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일단 내 앞에 있는 조잡한 도구로 시작하라. ... 시작을 해야 능력의 확장이 일어난다.

 

또 한가지 명심할 것은, '과도한 주인공의식'을 글쓰기에서 버려야 한다. 사람들은 생각만큼 남의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 문제를 두고두고 기억하고 되새기고 '색안경'으로 타인을 바라볼 만큼 부지런하지도 한가하지도 않다. ... 그리고 무엇보다 존재 개방의 수위를 고민하다 보면 자기 몰입이 어렵다. 좋은 글이 나오려면, 타인에게 비친 나라는 '자아의 환영'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자기 검열, 사회적 검열에 걸려 넘어지면 글을 쓰기 어렵다. 대개는 자기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로 남을 대한다. 만약 누군가 자기과거를 부끄럽게 여긴다면, 유사한 삶의 경험치를 가진 타인을 동정과 수치로 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는 과정은 자기의 편견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

 

스물여덟 살에 청상이 되어 삯바느질로 삼형제를 키우던 어머니가 순천 시내 서점 주인에게 "우리 아들이 읽고 싶은 책은 마음대로 읽게 하고, 사고 싶은 책은 그냥 가져가게 하면 월말에 들러 값을 치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거의 다' 좋은 책을 읽었다. 읽기와 쓰기는 다른 행위지만 내용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읽기가 밑거름이 되어 쓰기가 잎을 틔운다. 책을 읽어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어지고 사람을 이해하는 눈을 키운다. ... 좋은 문체에 대한 감을 잡는 것인데, 총체적으로 글을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독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내가 내 글의 첫 독자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곧 부단히 읽는 일이다.

 

푸코는 이어 "앎에 대한 열정이 지식의 획득만 보장할 뿐 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되도록이면 아는 자의 일탈을 확실히 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었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제도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축적된 정보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슬프게도 한 인간의 우주가 미디어를 통해 완성된다. 그래서 우리가 도덕, 상식, 통념이라 부르는 가치 체계는 워낙 당대의 것일 수밖에 없다.

 

글에는 적어도 세 가지 중 하나는 담겨야 한다. 인식적 가치, 정서적 가치, 미적 가치.

곧 새로운 지식을 주거나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거나 감정을 건드리거나. 발표자의 글은 ... 직업에 대한 정보가 알차다고 하기엔 부족하고, 독자가 부럽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하는 정서를 유발하지도 않으며, 새로운 사유의 전환이 일어날 만한 비판적 시각이 담긴 것도 아니다. 조금씩 다 애매해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창가에 턱괴고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잠을 청하면서 '노트'를 훑는다.

화분에 물을 주듯이 그것들에 눈길을 붓는다.

 

"모방은 물듧이다. 진정한 모방의 힘은 충실하고 충실해서 마침내 그 모방을 뚫어내는 길 속에 있다.

그러나 착실하게 모방의 길을 걸어보지 못한 자라면 냉소마저 허영일 뿐이다. ..."

 

"당시에는 지긋지긋했지만 이제 그 기억은 내 마음이 뜯어먹기 좋아하는 좋은 풀밭이 되었다." _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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