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문학

<핑거스미스> 새라 워터스 4.5

임월드 2018. 12. 27.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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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약간의 거짓말과 약간의 도둑질을 하며 살아간다

<아가씨>를 봤을 때, <핑거스미스>를 리메이크했다는 사실 정도만 알았고

소설에 대해선 전혀 모른 상태로 영화를 봤다.

지금 돌아보니 왓챠에 4점을 주었다.

지금 내게 남아있는 기억을 되짚어 봐도 뛰어난 영상미와 두 여인의 케미스트리가 인상 깊게 남아있다.

 

몇 년이 흐른 후, <핑거스미스>를 읽게 되었다.

정말이지 근무 시간 제외하고 쉬는 날, 지하철에서, 자기 전에, 2주 동안 틈나는 대로 책만 읽었다.

그래도 2주나 걸렸다.

800페이지를 넘는 분량을 다 끝내고 나서 느낀 점은, (아무래도 화제가 많이 됐던 지라 굳이 비교를 하게 되었다.)

<아가씨>는 핑거스미스의 아주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선 두 여인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춘 듯 보였고,

책은 각자가, 조금씩은 모두 핑거스미스인 개개인의 인생을 보여주었다.

 

리처드, 수, 모드, 석스비 부인, 이야기를 주로 이끌어가는 듯 보이는 주인공들만이 핑거스미스가 아니라

랜트 스트리트에 함께 사는 패거리 멤버들, 모드의 삼촌, 삼촌의 친구들, 수를 도와준 찰스 등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위해 숨기고, 속이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퀴어 문학 중 최고의 수작이라고 불린다고 하는데,

내게 동성애가 보이는 요소들은 극히 일부분이었다.

소설 전체를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 두 여인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이익을 더 생각했으며,

두 여인 모두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반항하고 도망치고 주체적으로 행동했다.

진정한 해방

 

내가 마음에 든 것은 결말이었다(같이 토론을 나누었던 사람은 <아가씨>의 결말이 훨씬 좋다고 했다).

<아가씨>에서 음란서적을 찢고 그곳을 뛰쳐나오는 것도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할 수 있지만,

자신이 억압받았던 장소, 수단(책), 행위들을 오히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주체적으로 해나가는 것,

이것이 나는 진정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 생각한다.

비록 삼촌의 명령으로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자신에게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고,

삼촌이 죽고 나서는 명령으로 행하던 글쓰기가 자신의 의지로 바뀜으로써 진정 '자신의 일'로 만든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 수는 모드를 찾아 브라이어로 갔지만

글쓰기를 하고 있는 모드를 보고 충격을 받아

"여기에 완전히 홀로 처박혀 '이딴 책들'이나 쓰고 있는 너를 보게 되다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드는 당당하게 말한다.


"왜 그러면 안 되지?"

 

모드의 이 한마디는 도끼가 되어 내 머리를 깨부수었다.

과거의 기억, 특히 안 좋았던 경험을 피해 가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되려 그것을 선택하는 것.

트라우마로 남기지 않고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기꺼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현명함.

이것이 진정한 주체적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을 읽고 내 마음에 남은 것은 동성 간의 연애도 아니고 억압당한 여자의 탈출도 아니다.

각자의 처지에서 자신을 위해 속고 속임을 당하는 수많은 캐릭터의 군상들과

갖은 수모 끝에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한

모드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나는 마지막(이자 모드 인생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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