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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3.5

임월드 2019. 5. 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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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 작가의 글은 생생하다.

속도를 내서 읽어도 이해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잘 읽힌다.

자신의 경험을 반영했기에 글이 그토록 현장감이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그만큼 글을 잘 쓰기에 가능한 일이다. 장강명 작가가 종종 생각 났다.

 

 

<잠실동 사람들>은 내가 읽은 정아은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모던 하트>가 처음이고 두 번 째로 <엄마의 독서>를 읽고 싶었지만

그날 갔던 알라딘 서점에 그 책이 없었으므로

나는 남아있던 <잠실동 사람들>을 구입했다.

 

 

<모던 하트>를 매우 재밌게 읽었고,

심플하면서 생생한 문체도 마음에 들었던 차에,

<엄마의 독서>도 추천받았던 터라,

정아은 작가는 믿고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실동 사람들

 

 

잠실동 사람들의 이야기다.

잠실동에는 삐까뻔쩍한 고층 아파트도 있고

뒷골목에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원룸의 지하방도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 중심에는 잠실동 엄마들이 있다.

 

 

 

하나의 사건, 열여덟 명의 이야기

 

 

이 소설은 24개의 챕터로 이루어져있다.

챕터가 바뀔 때 마다 주인공 시점이 달라진다.

24개의 소제목은 그 챕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이름이다.

 

 

잠실동 사람들은 장편소설이다.

이는 곧 하나의 긴 이야기라는 뜻인데, 결코 하나의 이야기라고 말 할 수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시점을 계속 바꾸어 가며 사람들이라는 뭉뚱그린 개념이 아닌 개인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하나의 사건에 개인의 수만큼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저자는 열여덟 명의 인물을 대표적으로 보여주었지만 사실은 열여덟 명이 아니라,

잠실동에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개인들의 이야기가 존재할 것이다.

 

 

 

대학생 이서영

 

 

이야기는 단시간 고수익알바를 하는 여자 대학생으로 시작된다.

나와 가장 가까운 나이대여서 그랬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슬펐다.

헐떡이는 아저씨 밑에서 온갖 수치심과 패배감을 느끼면서도

‘15분만 기다리면 15만원이 이 남자의 지갑에서 나올 것이다.’ 하며 주먹을 꼭 쥐는,

95년생의 이 여자 아이의 인생을 상상하자니 너무나 가엾고 슬펐다.

 

 

너무 적나라한 단어를 쓰기 싫지만 이는 분명 성매매다.

경제적으로 의지할 환경이 없으면 이런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서영은 자신의 대학 등록금을 내기 위해 이 알바를 시작했다.

돈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라, 돈을 감당하기 위해서 이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 책을 읽고 부모의 자격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대출금 이자를 내지 못해 카드 회사의 독촉에 쫓기고

결국에 음지의 길로 발을 들이기 시작한, 이 대학생이 살아가게 될 인생을 생각해보면,

그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부모의 중요한 의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엄마와 교육

 

 

 

다양한 주인공 시점이 나오지만 주로 등장하는 인물은 엄마들이다.

 

그들의 관심은 하나다.

아이 교육.

그들이 잠실동에 사는 것도, 이사를 계획하는 것도 전부 아이의 교육 때문이다.

 

 

그들의 일상은 아이 픽업, 과외 선생님 알아보기,

급 높은 학원 찾기, 엄마들과 모여 정보 얻기, 학교 선생님 달달 볶기,

뒷돈 챙겨주기 등으로 채워져 있다.

 

이는 모두 아이를 위한 것이다.

아이만을 위해 사는 엄마들이니까 말이다.

 

 

 

해성엄마 장유미

 

 

해성은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는 아이였다.

돌 지날 무렵부터 문화센터니, 놀이 학교니,

개인 교습이니 안 시켜본 게 없었다.

 좋다는 곳은 다 가고, 좋다는 선생님은 다 모셔다 교육시켰다.

 ... 그런데도 해성은 영 시원찮다.”

 

 

(..?진심?) 무렵부터 이것저것 시켰다는 해성엄마.

그럼에도 자기 기준에 못 미치는 자식을 보면서 한숨만 쉰다.

자기 자식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은 마음은 백번 이해를 한다.

하지만 해성엄마의 이력을 살펴보면

더욱 해성에게 그토록 애간장을 태우는 이유가 보인다.

 

 

결혼한 지 13,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꾹 참고 아이들 교육에 전념해왔다.

아이를 낳지 않고 엄마의 권유대로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면 지금쯤 대학교수가 됐거나,

 하다못해 EBS 영어 강사라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유미는 유학을 가지 않았고, 아이를 낳았다.”

 

 

지성은 탄생과 동시에 유미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밤낮없이 울어대는 시뻘건 핏덩이에게 그녀는 젊음과 자유와 의지 같은,

인생의 모든 여유를 송두리째 바쳐야 했다.

그것은 자의라고도, 사회의 강요라고도 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에 의한 것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만을 합쳐놓은 또 다른 자신이었다.”

 

 

그렇다.

해성엄마 장유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아이를 자신의 미래와 맞바꾸었다.

자식을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하는 이 엄마는 자식의 삶에 자신을 투영한다.

자신의 미래를 포기한 만큼 자기 자식이 잘 되어야 한다.

꼭 그렇게 되어야 본인의 삶도 만족스러운 것이 된다.

 

 

 

 

삶의 중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사회의 통념대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을 놓아야 하는 엄마들.

혹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미래를 기꺼이 포기하는 엄마들.

 전자가 됐건 후자가 됐건 여자의 삶은 엄마의 삶으로 바뀐다.

남자는 본인의 삶에 아빠의 삶이 추가된다.

 

 

나는 세상 모든 부모를 응원한다.

한 사람의 인생의 시작을 책임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도 아니고 저절로 되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뼈를 깎는 인내와 희생을

경험했기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한다. 

.

이 책의 엄마들도 그렇다.

일방적인 희생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달고 살아야 하는 엄마들의 삶이기에 

더더욱 단편만 보고

그들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있다. 

 

 

 

엄마들이

 아이와 대화하는 장면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자신이 그토록 케어하는 당사자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많이 아파? 그럼 1교시 쉬고 2교시부터 갈까?” 정도가 전부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자기 자식이 그 수준이 되지 못해 불안에 떨고

 어떻게든 급이 높은 학원, 급이 높은 동네로 가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과연 정말 아이가 걱정되고 잘 되길 바래서 하는 마음인건지(본인들은 틀림없이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면 (본인 기준) 자식이 안 되는 꼴을 못 보는 건지 헷갈리게 한다.

 

어떻게든 못난 자식으로 키우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

주변의 상황에 철저하게 휘둘리는 나약한 사람으로 만든다. 

 

이를 꼬집기라고 하듯이 정아은 작가는 제일 마지막 챕터에 딱 한번,

아이를 주인공 시점으로 넣는다.

그 전까지는 아이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초등학생 허지환

 

 

길가에 죽어있는 비둘기를 구경하다 엄마에게 끌려 집에서 과외를 한다.

지환은 엄마 몰래 비둘기를 숨겨 방으로 데려와 서랍에 넣었다.

과외를 하는 동안에도 선생님의 말은 들리지 않고 비둘기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신경을 쏟고 있다.

 그러다 서랍에서 비둘기가 퍼드득 대는 소리가 나고 지환은 비둘기를 꺼내 집어 들었다.

기겁하는 선생님을 보며 지환의 감정상태가 묘사된다.

 

 

선생님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한 발짝 정도 떨어진 거리에 멈춰 서서, 지환은 선생님을 빤히 쳐다보았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한 어른의 얼굴을.

선생님이 안됐단 생각과 함께, 뿌듯한 느낌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마치 자신이 커다란 어른이 되고 선생님이 작고 작은 어린아이가 된 듯한 느낌.

그것은 묘하고 저릿한,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지환은 이 순간이 조금 더 지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씩 웃었다.”

 

 

이렇게 이야기는 끝난다.

 

 

조그맣고 연약한 어린아이가 겁에 질린 선생님을 보며 처음으로 느낀 감정.

이 아이는 처음으로 우월감이란 감정을 느꼈다.

늘 부모의 주도권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자신의 선택 없이 살아온 이 아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겁에 질리게 하고

자신의 뜻대로 상대방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우월감을 느낀 것이다.

 

 

마지막에 이 장면을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월감이 지속되길 바라는 이 아이를 끝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 의도가 있을까?

 

 

 

 

공간이 주는 이야기

 

 

모든 사건은 항상 어느 공간에서 일어난다.

물리적으로 너무 당연한 일이라 무용한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에서 공간이라는 개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정아은 작가는 이 책을 쓰며 공간사에 가장 매료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잇는 곳은 원래 누구의 소유였는가?

그는 어떻게 해서 이 곳을 소유하게 되었는가?

... 지금 대한민국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힘들의 우열은 어떻게 결정되었는가?”

 

 

자신이 소설 배경으로 잠실을 택한 이유도 이렇게 말한다.

 

 

길고 날카로운 칼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는 고층 빌딩 숲 바로 건너편에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재래시장과 낮은 빌라촌이 공존하고 있지요.

대한민국의 오래된 아파트들 대부분이 재건축을 거쳐

30층 이상의 고층아파트로 올라갈 예정이라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잠실은 대한민국 거주문화의 명징한 미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소설의 배경으로 잠실을 택한 이유이고

또한 이 소설이 잠실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닌 이유입니다.”

 

 

캐슬이 공존하는 공간은 그만큼 다양한 전형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간에 따라 갑과 을이 생기고 계층이 나뉜다.

분명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다른 공간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학습지 교사 현진의 말이다.

 

 

 

"봄날 오후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가하고 생기 넘치는 풍경.

 

현진은 멈춰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들과 엄마들은 모를 것이다. 조금만 걸어가면

 

다른 종류의 놀이터가 계속해서 나오는 이 깔끔하고 안전한 공간이,

오직 사람만이 다니도록 곱게 포장된 아스팔트 보도가,

일정한 간격으로 심긴 조경수들이,

여름이면 시원하게 터져나오는 분수대가,

당연하듯 지나다니는 단지 내 공원과 상가가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

그런 편리를 누리고 사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현진은 스스로를 특권 계층과 분리하여 자신은 하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파트라는 공간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와 도로와 놀이터와 주변 상가들,

현진은 이 공간을 체험하지만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안다.

공간은 이렇게, 스스로를 계급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현진 개인의 이야기다. 현진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아파트의 사는 모든 사람들이  현진보다 특권을 누리는,

더 '잘'사는 사람들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특별나게 더 행복해 보이는 인물은 없다.

반지하 원룸에서 살던, 고층 아파트에 살던

그저 각자의 공간과 상황에서 무언가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소설은 재밌게 읽었음에도 분명 유쾌한 소설은 아니다.

읽고 나면 씁쓸함이 제일 깊게 남는다.

많은 의문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긴 하지만 결코 즐거운 생각은 아니다.

결코 소설속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까.

여운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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