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문학

<연애의 기억>_ 줄리언반스 3.9

임월드 2019. 2. 24. 22:35
반응형

 

 

 

 

 

줄리언 반스는 프랑스 메디치 상, 맨부커 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이 있는 영국 대표 작가이다.

 지인을 통해 이 작가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플로베르의 앵무새> 등 대표 작품들도 알고는 있었지만,

줄리언 반스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년 8월에 한국에서 발간 된 따끈따끈한 신작으로

줄리언 반스라는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제목이 좀..?

 

제목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일단 원제는 <The Only Story>이다.

그대로 해석하면 <단 하나의 이야기>.

그런데 왜 한국 버전의 책 제목은 <연애의 기억>일까?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단순히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연애'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 이 책은 너무나 맞지 않다.

 

 

물론 제목만으로, 첫 문장만으로 책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될 만큼 중요한 것이 제목이다

제목은 독자가 책을 유추할 수 있는 최초의 단서이고

이를 통해 독자는 제목이 이 책 전체의 압축된 의미임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관점에서 <연애의 기억>은 좋은 제목이 아니다.

 줄리언 반스는 그가 쓴 제목처럼 단 하나의 이야기를 말하고자 했다.

단 하나의 이야기라는 문장은 너무나 적절한 제목이었다.

 원제로 내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것

 

 

줄리언 반스 책은 두 번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두 번째에서는 많은 것들이 보이고 느껴진다고 한다.

나에게는 줄리언 반스 책이 처음이었다.

한 번 정독한 뒤, 다시 한 장 한 장 훑어보는 중, 이 문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나는 얻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관계를 기존의 범주에 집어넣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거기에서 일반적이거나 공통적인 것을 본다.

 반면 당사자들은 개별적이고 자신에게 특수한 것만 본다.”

 

 

책 초반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 하나로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은 우리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저자가 제공하는 힌트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연상연하 커플의 불륜 이야기가 아니라,

단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가 보는 폴과 수전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공통적이다.

 이 말을 풀어 말하면 이런 뜻이 되겠다.

 

 

우리는 그들이 될 수 없다.

고로 우리는 그들의 삶의 단편만을 보게 된.

우리가 아는 단편은 무엇인가?

 ‘연상연하 커플’, ‘남자가 미성년자’, ‘둘이 도망침’, ‘여자는 가정을 버림’,

여자가 알코올 중독자’, ‘남자는 늙은 여자를 버림등등.

이러한 단편들을 가지고 우리는 그들의 삶을 요약하고 분류한다.

 ‘연상연하의 불륜 커플이 도망쳐서 생활을 하다 비극을 맞이한 이야기로 싸잡아 묶어

 그들의 삶을 불륜이라는 장르로 분류하고,

또 다른 불륜 이야기와 같은 범주 안에 넣는다.

이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실제로 저지르고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폴이 보는 그와 수전의 관계는 개별적이고 특수적이다.

폴은 관계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폴은 폴의 삶을 산다. 그녀와 12년을 함께한다.

그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을 폴이 겪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폴의 눈으로 그의 삶을 따라간다.

 함께 겪는다. 그의 생각과 선택과 견딤과 고통과 변화를 그대로 경험한다.

 우리는 더 이상 폴의 삶을 요약하고 분류할 수 없다. 마치 자신의 삶을 그렇게 할 수 없듯이.

 

누구의 삶도 요약되고 분류될 수 없다. 모든 인간의 삶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는, 단 하나다.

 

 

3자의 어떠한 일을 일반적인 범주로 묶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다.

나의 잣대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도 매우 쉬운 일이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물의 생각, 변화, 선택을 보면서 그것에 공감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비판을 하거나 비난을 하는, 즉 판단을 내린다.

인간에게 판단은 매우 쉽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초반에 그 문장을 던짐으로써 우리의 습관을 사전에 차단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이야기의 흐름과 변화가 너무나도 세밀하고 작고 느려서,

 나는 분명 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폴의 선택, 주저함, 망설임,

용기, 노력, 거짓말, 열정, 희망, 포기, 사랑,

온갖 내면과 외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겪게 된다. 

그의 삶을 키워드만으로( '불륜', '미성년자') 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인물 중심

 

인물을 봐야 단 하나의 이야기가 보인다.

수전은 점점 알코올에 손을 대지만 우리는 그런 수전을 이해한다.

폴은 점점 정신이 악화되어 가는 수전을 옹호하고 그녀에게 거짓말까지 하지만 그런 폴을 이해한다.

나중에 수전을 그녀의 딸에게 맡기지만 그런 폴을 우리는 이해한다.

 무도 그를 비난할 수 없다.

 

 

이해와 당위성

 

 

조심해야 할 것은 이해와 당위성은 다르다는 점이다.

 내가 그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둘은 엄연히 다르다.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은 없지만 정당화 될 수 없는 행동은 매우 많다.

어떤 사람이 자살하기 위해 지하철에 뛰어들었다.

우리는 그 사람이 그 행동을 왜 했는지 이해한다.

하지만 그 행동을 옹호하거나 옳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소설을 통해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의 삶도 한 줄로 요약될 수 없다는 것,

나 자신을 개별적이고 유일하며 특수하게 보듯이,

타자의 삶도 그렇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이다.

 그래야 그들을 이해를 할 수 있다.

 잠깐 뜨고 없어지는, 뉴스 속에만 존재하는 타자가 아니라

단 하나의 이야기를 살아가고 있는,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자체로 무수히 복잡한 삶의 연장선상을 살고 있는

 개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해 없이 판단하는 것과 이해를 한 후 판단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이해 없이 판단하게 된다면, 지하철에서 자살한 사람은

 미친 또라이에 남까지 죽이는 이기주의자가 되지만(이게 바로 단편을 보고 그를 일반적이고 공통된 범주에 집어넣는 행위이다),

 이해를 한 후라면 그는 너무나 죽고 싶은 나머지 다른 피해 상황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람,

혹은 자신이 당장 죽는 것이 중요해 다른 피해 상황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된다.

한 사람을 표현하는데 이렇게 달라진다.

이해를 거친 후 판단하는 사고방식은 감정의 과잉상태에서 한 층 거리를 두게 해주고,

그 후에 어떤 선택을 해야 된다면 그 선택은 당연히 덜 어리석은선택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그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에서 한 층 멀어질 테니 악플은 달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빌렸다.

물론 두 번 읽을 것이다.

우울한 소설은 대개 의도적으로 우울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있는데, <연애의 기억>은 그러지 않아서 좋았다.

 무엇보다 두 번째 읽었을 때 느껴지는 그 진한, 한 층 더 농축된 메시지를 느껴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줄리언 반스 책을 또 읽지 않을 수 없다.

 

 

반응형